중국의 4대 미인은 중국에서 손꼽는 4명의 미인으로
서시, 왕소군, 양귀비, 초선 4명의 여인들을 말한다
서시 ( 西施 )
서시(중국어: 西施, 병음: Xī Shī 스스, 생몰년 미상)
고대 중국 4대 미녀 중 한 명으로, 본명은 시이광(스이광, 施夷光) 이다.
중국에서는 서자(시쯔, 西子) 라고도 한다.
기원전 5세기(춘추 시대 말기)의 사람이다. 현재의 저장성 사오싱 주지 시 출신이다.
왕소군, 양귀비, 우희와 함께 중국 4대 미녀들 중 1명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또한 이들 중 가장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 생애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자 월나라 구천의 참모 범려의
전략에 따라 패전의 처리에 대한 공물로 오나라 부차의 여인이 된다.
서시가 부차에게 총애를 받자 부차의 후궁 위희부인이 서시를 질투하여
서시를 비밀리에 제거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서시에게 빠진 부차는 월나라를 끝까지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던
오자서를 죽이면서까지 월나라 경계에 소홀하게 되고
결국 국력을 키운 월나라에 패망하게 된다.
오나라가 패망한 뒤의 서시는 월왕 구천의 후궁이 되어 총애를 받지만,
구천의 정부인인 월부인에게 비밀리에 제거당한다.
중국의 사가들은 오나라가 망한 후 서시의 일생에 대하여 많은 설들을 만들었다.
그 중 서시는 범려의 연인으로 오나라가 망한 후 그가 월나라를 떠날 때
비밀리에 데리고 갔다는 설이 사가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았다.
다른 설로는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한 후 월의 구천이 서시를 궁으로 부르지만
범려가 그녀와 강에서 만나 그녀를 설득하고 서시가 강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나
오나라가 망할 때 분노한 백성들이 서시를 죽였다는 설도 있지만
모두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왕소군 ( 王昭君 )
왕소군(王昭君, 기원전 1세기) 은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
복주류약제 선우(復株絫若鞮單于)의 연지(처)로 본래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다
이름은 장(嬙)이다. 성을 왕, 자를 소군이라고 하여
보통 왕소군이라고 불리며 후일 사마소(司馬昭)의 휘(諱)를 피하여
명비(明妃), 왕명군(王明君) 등으로도 일컬어졌다.
형주 남군(현재의 호북성 사시) 출신으로 서시, 양귀비,
우희와 함께 고대 중국 4대 미녀들 중 1명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 생애
전한의 원제 시대, 흉노의 호한야 선우가 한나라의 여성을 연지로 달라고 해
왕소군이 선택되어 그의 장남을 낳았다
이후 호한야 선우가 사망하자, 당시 흉노의 관습대로
아들 복주류약제 선우의 처가 되어 둘째 딸을 낳았다
한족은 부친의 처첩을 아들이 물려받는 것을 꺼려하여,
이것이 왕소군의 비극으로 민간에 전승되었다.
황량한 초원지대가 대부분이었던 흉노의 땅에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땅을 그리며 느꼈을 왕소군의 감정을
당의 시인 동방규는 "소군원" 이라는 시에서 노래한다.
그 시구 중에 "봄은 왔으나 봄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라는 구절은
흉노 땅의 봄을 맞이했음에도 고향 땅의 봄같지 않아
더욱 사무치게 고향이 그립다는 그녀의 애절한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지금도 이 시구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그리움의 인용구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후 72세가 되던 해에 병을 얻어 돌무덤에 안장되었는데,
사람들은 그 무덤을 일컬어 소군묘(昭君墓) 혹은 청총(靑塚)이라고 부른다
양귀비 ( 楊貴妃 )
양귀비(楊貴妃, 719년 6월 26일 ~ 756년 7월 15일)는
당 현종의 후궁이자 며느리이다
그녀의 성은 양(楊)이고 이름은 옥환(玉環)이며
귀비는 황비으로 순위를 나타내는 칭호이다.
벽화 등 그림에서 유추해보면, 당시 미인의 표준으로 실제로는 풍만한 여성이었다.
또한, 재주가 뛰어나 비파를 비롯한 음악과 무용에 큰 재능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양귀비가 푸른 눈을 가지고 있다. 안녹산과 마찬가지로
색목인 출신이다라는 설도 있으나 이것은 확실한 설도 아니며
후대 학자들의 상상과 추측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돌궐과의 전쟁 50년 이후 돌궐 제2제국이 나타나면서
서역 지역은 다시 돌궐 영향권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도 색목인들이 당나라에서 사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당 현종 이융기에게 총애를 받았지만,
그것이 과도하여 끝끝내 안녹산과 사사명이라는 두 호족 세력 무장 대표가
공동 주도하여 반란을 획책한 이른바 안사의 난이 발발하는 원인이 되었고
이 역사적 사건의 배경을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도 부른다
초선 ( 貂蟬 )
삼국지연의에서 왕윤의 수양딸로 등장해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여포가 동탁의 이름 없는 시녀와 염문을 가졌다는 정사의 기록과
왕윤이 여포를 부추겨 동탁을 죽이게 했다는 사실을 연의에서 각색한 것이다.
초선은 비록 삼국지 상에서는 가공의 인물이지만
이에 해당되는 실존인물은 있었다.
정사 후한서 여포전에 의하면 여포는 동탁의 시녀와 밀통을 하고 있는데
계속 밀통하다가 동탁이 이를 알자 여포에게 수극을 던지며
둘의 연애를 반대했다고 나온다.
이를 이용하여 왕윤이 여포를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결국 동탁을 죽이도록 만든다.
정사 후한서 여포전에 의하면 여포와 밀애를 한 이 동탁의 시녀는
이름이 알려진 바 없으며 왕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나관중은 이 사실에 대해 삼국지연의를 집필할 때 동탁의 시녀 대신
왕윤의 양녀라는 설정으로 변경하고 초선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